교육과 권력

Michael W. Apple의 『교육과 권력(Education and Power)』

*2001년 2월 26일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등이 후원하고 진보교육연구소와 교육비평이 주관한 행사인 <마이클 애플 초청 강연회> 자료집 “마이클 애플과 한국교육운동의 만남-세계화시대의 한국교육개혁과 진보적 교육운동의 길찾기” 에 수록한 서평.

진보교육연구소


미국에서 사회 체제 안에서의 교육의 역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흐름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의 실패에 따른 교육체제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비판적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주로 사회체제 안에서의 교육의 역할을 계급적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흐름의 연구경향을 ‘교육체제에서의 재생산․저항 이론’이라 할 수 있으며, 이에는 대표적으로 보울스와 진티스(Bowles & Gintis), 부르디외(Brudieu), 윌리스(Willis)등의 연구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교육이 이루어지는 미시적 공간에서의 상호작용과 교육과정이 공식적 정당성을 가지게 되는 사회적 과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신교육 사회학’이 제기되었으며, 이의 대표적 학자로는 영(Young)을 들 수 있다.
『교육과 권력』은 이러한 교육사회학적 입장에 대한 전반적인 개괄․검토 위에서 이를 극복하고자하는 시도에서 쓰여진 책이라 할 수 있다. 애플은 교육과 권력은 교육을 통한 재생산과 재생산 과정에서의 대립과 갈등․모순, 학교 지식과 명시적․잠재적 교육과정의 재생산에서의 역할, 교육적 정치적 실천과제의 방향 등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논하고자 한다.
애플 자신의 말대로 “교육과 권력은 교육과 이데올로기가 끝난 자리에서 시작한다.”(p.8). 즉, 그의 전작인 [교육과 이데올로기]의 내용에 대한 극복과 동시에 연장의 선상에서 『교육과 권력』을 읽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육과 이데올로기]는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교육체제의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이는 교육에 대한 비관적 견해를 더한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 이에 대해서 애플은 『교육과 권력』은 여러 면에서 이전에 비하여 훨씬 낙관적인 견해를 표명한 책임을 밝힌다. 물론 그의 낙관적 견해는 실천과제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실천적 개입의 의지를 표명했을 때의 낙관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애플은 [교육과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교육과 권력』에서는 무엇을 논하고자 하였는가? 이를 개괄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애플은 교육과 이데올로기에서 재생산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설명하는데 많은 노력을 할애한다. 그러나 애플은 『교육과 권력』에서는 그람시(Gramsci)의 헤게모니적 의미에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즉, 그는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기반으로 하여 교육의 장에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불완전하게 점유하고 있으며, 교육의 공간은 지배 이데올로기와 대항 이데올로기의 각축전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즉, 교육공간은 헤게모니 투쟁의 공간이며, 이 공간에서의 헤게모니 우위 쟁탈을 위한 교사와 교육운동가, 학생들의 저항과 투쟁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데올로기는 논리 정연한 신념체계가 아니다. 이데올로기를 유일한 신념체계라고 믿는 것도 잘못이다. 오히려 이데올로기는 내적 일관성이 없는 사회적 관계이며, 삶에서 우러나온 의미체계요 실천체계이다. …(중략)…이런 이유로 여러 이유로 이데올로기는 서로 경쟁 관계에 있으며 계속적으로 투쟁하게 된다. 사회의 제도는 이런 투쟁이 일어나고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지기도 하는 장이 된다. 학교는 이러한 장의 하나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pp.33-34)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학교체제의 운영 원리와 산업체제의 운영원리와의 대응에서 교육체제의 변동과 발달을 설명하고자 한 보울스 진틴스의 대응이론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즉, 학교라는 상부구조가 산업구조라는 하부구조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규정되며, 학생들은 이 안에서 별다른 저항이나 갈등 없이 지배 이데올로기의 의도대로 재생산된다는 주장은 구체적인 학교 안에서의 재생산과 갈등, 모순과 저항의 과정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플은 이에서 더 나아가서 이러한 재생산 이론이 가져왔던 또 하나의 반사적 역효과에 대해서 분명히 지적하며 이를 넘어설 것을 주장한다.
너무 결정론적이고 경제 일변도로 잠재적 교육과정을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가 재생산의 한 요소이며,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보면, 불평등을 정당화라는데 필요한 여러 관점의 한 요소가 된다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중략)…좌파의 수많은 학자와 교육자들이 수행해온 최근의 분석들은 그 자체가 조합체제 지배 이데올로기적 시각을 재생산한 것들이다.(p.96)
애플에게 있어서 학교는 끊임없이 역동하는 헤게모니의 쟁탈전이 되는 곳이다. 하지만 물론 이러한 해게모니적 쟁탈은 현재까지는 지배집단의 우위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쟁탈전과 지배․저항의 과정에 대하여 애플은 윌리스의 ‘간파’와 ‘제약’이라는 개념을 계급적, 인종적, 성적 불평등에 대해서도 확대 적용하여 분석함으로써 다층적 모순에 대한 다층적 거부와 저항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교육체제에서는 계급 모순뿐만이 아니라 여러 다층적 모순이 중첩된 형태로 결합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교육이라는 공간은 이러한 모순들이 갈등이 끊임없이 전개되는 역동적인 공간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애플은 이러한 갈등과 저항이 학교의 재생산 과정의 중요한 역할의 하나임을 분명히 한다.
나는 학교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사회적 기능의 하나가 일탈을 확대하는 일이라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학교는 특정 종류의 일탈을 자연히 만들어낸다는 것이다.(p.65)
비교적 일정한 수준의 실업률을 유지하는 것이, 즉 사실상 실업을 만들어내는 일이 보다 효율적인 경제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문화제도도 일탈과 낮은 성취도를 자연히 만들어낸다. 특정 형식의 문화자본을 분배하거나 이를 희귀하게 만드는 일은 그 지식의 생산을 극대화하는 일보다 덜 중요한 것이다.(p.71)
이는 윌리스의 문화적 저항이론의 내용을 기본적 기반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애플은 문화적 저항이론 이후, 교육의 과정에서의 거부적, 反학교적 문화를 통한 저항을 미화시키는데 급급하였던 이후의 연구와 실천경향의 문제점에 대해서 분명히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진정한 질문은 저항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 이 책 전체를 통해서 내가 인식시키기 위한 바와 같이, 저항은 표면적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 저항 자체가 모순되지 않는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계급이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재생산하는 일을 이들의 저항이 극복하려고 하는가, 그리고 정치교육이나 개입을 위하여 이들의 저항을 활용할 수는 없는가 등의 문제가 될 것이다. (p.204)
즉, 애플은 경제 재생산 이론과 문화재생산 이론 양자를 극복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출발점을 ‘실천’에서 찾고자 한다. 애플은 경제 재생산 과정과 문화 재생산 과정에 대한 변증법적 인식을 요구한다. 그리고 애플은 기존의 재생산 이론과 저항이론이 교육체제의 재생산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적 역할에만 만족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진보적 교육운동에 대한 실천적 인식과 교육을 통한 정치적 진보의 가능성과 이를 위한 방향과 경로를 제시하고자 한다.
만약 우리가 덜 환원론적․기계론적인 입장을 취한다면 우리의 이론에도 중요한 변화가 정말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이런 변화는 실천을 수반하고 있다. 우리가 이런 실천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때에 한해서, 내가 이 책의 서두에 기술한 사회경제적 문화적 현실은 바뀔 수 있다.(p.221)
애플의 『교육과 권력』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지점 중의 하나는 기존의 재생산, 저항이론이 학생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그람시적 개념에서의 진보적․유기적 지식인으로서의 교사의 고민과 실천의 방향에 대해서도 논한다는 것이다. 이는 교사운동을 생각하는 입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실천의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데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애플은 미국의 교사들이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상대적 자율성이 해체 당하고 있으며, 교직에 대한 기술적 관료적 통제가 더욱 강해져 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가르치는 일이 비교적 자율적인 것이라는 본질 때문에 (보통 문을 닫고 가르치며 방해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교육기관은 특유의 방식으로 통제되어 온 내적 역사 때문에(성별 관계에 기반을 둔 미국에서의 온정적 간섭주의 행정 스타일) 학교는 비교적 최근까지 ‘실천적 면에서’ 기술적․관료적 통제에 부분적으로 저항해왔다. 이 ‘상대적 자율성’이 오늘에 와서 깨어지고 있다.(p.182)
이러한 자율성의 해체는 주로 교육내용의 선정 조직, 수업의 진행되는 과정에서의 패키지형 교육과정의 개발과 도입이라는 방식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패키지형 교육과정의 도입은 교사를 교육의 과정에서 소외시키며, 학생 또한 자신의 학습에서 소외되게 한다. 패키지형 교육과정의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교사노동의 변화는 학교운영의 방식의 변화를 기반으로 하여 교사들을 개별화, 고립화시킨다.
패키지형 자료 외에 교사훈련 기관, 교육실무 과정, 교사용 잡지, 자급지원이나 교사수급형태, 그리고 실제로 쓰이는 교육과정 자료 자체에서도 우리는 이런 징조를 발견할 수가 있다.(p.186)
미리 포장된 교육과정 체제를 기본 교육과정 형식으로 채택하는 경우가 증가할수록, 교사들은 서로 상호 작용할 필요성이 없어진다. …(중략)…모든 것이 미리 결정되면 교사들은 상호 작용해야 할 부담은 없어지는 것이다. 이 때 교사들은 아무 속에도 소속되지 않는 외톨박이가 되며, 동료로부터 실질적인 자기 일로부터도 유리되는 것이다. (p.187)
하지만 애플은 이러한 과정에 대하여도 기존의 재생산 이론이 가지고 있는 가정 즉, 아무런 저항과 갈등 없이 이러한 개별화와 교육노동에서의 소외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가정에 대해서 분명히 반대한다. 즉, 이러한 교사의 ‘프롤레타리아화’는 갈등과 투쟁의 과정 속에서 저항을 일으키기도 하며, 이는 교사운동의 가능성을 확대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주장하려는 것은 기술적 통제를 점진적으로 도입함으로써 ‘발생되는’특정 종류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의 창출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의 갈등이나 투쟁 속에서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교사는 통제된다. …(중략)…다른 한편으로 보면 저항이 일어나기도 한다. …(중략)…이러한 내적 조건은 교사들이 상품화된 문화형식을 자신의 것으로 전환시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p.197)
이러한 교사의 노동조건의 변화와 이에 따른 저항의 가능성은 이전의 전문가주의의 허구 속에서 벗어나서 교사도 엄연한 하나의 노동자이며 여타의 노동계급과의 연대의 필요성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는 그의 정치적 주장으로 귀결된다. 이제 더 이상 교사는 전문적 위치를 보장받고 그 자율성을 인정받는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생산직, 사무직 노동자들과 그리고 여러 저항집단과의 연대를 통해서 싸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나 주정부기관에서 일어나는 국지적 투쟁은, 생산현장이나 회사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사무실이나 현장에서 세력을 조직화 해 가는 여성들, 그리고 소수 민족 계의 학부형들이 경제적 정치적 정의를 실현하려는 여러 가지 투쟁과 연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p.165)
교사들로 하여금 이런 문제를 이해하도록 하고, 블루칼라․핑크칼라․화이크칼라 노동자들과 교사들이 처지가 서로 비슷하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하나의 정치적 단계이다. 만약 이들이 사실상 모순적 계급의 위치에 설 수 있다면, 정치교육으로 향한 길을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p.205)
교사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의 변화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하고 이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투쟁할 것과 다른 저항세력과의 연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애플의 입장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또한 애플은 이와 함께 이전의 교육에 대한 비판적 이론과 교육운동이 중요시하지 못했던 학교에서의 교육과정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교육과 권력』에서 애플이 주장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는 먼저 이전의 재생산이론의 양대 조류라 할 수 있는 경제적 재생산 이론과 문화적 재생산 이론을 극복하고자 한다. 또한 설명적 인식을 넘어서 실천적 인식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교육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헤게모니의 쟁탈전을 교사와 학생이 정치적 활동을 여타의 저항세력과 함께 여러 부분에서 진행할 것을 주장한다. 그가 의도한 것들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는지에 대해서 적절한 평가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의 주장이 한국사회의 교육을 이해하고 한국의 교육운동을 고민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지점을 지적해 주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최근의 한국 교육의 상황은 교육이 사회이동의 수단이 아니라 점점 더 계급 재생산의 기제가 되어가고 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경제적인 방식으로든 문화적인 방식으로든 한국의 교육체제는 그 재생산 기능이 강화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교육의 이러한 기능의 부당함에 대해서 근거 있는 주장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교사의 노동조건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교사운동의 방향과 여타의 진보세력과의 연대전략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최근의 교육과정 투쟁에서 알 수 있었듯이 학교의 실제 운영과 교육의 실제 과정에 대한 진보적이고도 교육적 입장에서의 개입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애플의 『교육과 권력』은 한국 교육과 교육운동을 고민하는 이론적․실천적 고민의 지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의 구체적인 고민은 우리의 몫일 것이다. 그의 주장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과 평을 마치면서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통해서 다시 한번 실천적 지점의 필요성을 확인해 본다.
좌파의 다수 학자들을 포함하는 많은 사람들은 어떤 정치적 활동을 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조건이 교육의 중요성을 망각해왔고, 교육의 목적․내용․형식에 대하여 할 수 있는 투쟁도 망각해왔다. 이들에게 학교란 단지 지배도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학교가 지배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p.12)

댓글 없음:

댓글 쓰기